1960년대 영국은 중산모자를 쓴 신사들의 도시, 예의의 도시, 콩 수프와 안개와 근위병과 마마이트 잼이 떠오르던 진부한 도시에서 이른바 젊은이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즈 Mods라는 서브컬처를 만들어 냈으며, 프랑스의 <보그> 잡지를 보면서 패션을 따라 입었습니다, 심지어 골루아즈, 지탄이라는 프랑스산 담배를 피울 정도로 프랑스를 열광적으로 흠모했는데요, 특히 그들은 프랑스 영화배우 중 안나 카리나를 뮤즈를 삼을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덴마크의 코펜하겐에서 태어나 자란 안나 카리나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의 여주인공’이란 수식이 달리기 전까지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모친의 바람기 때문에 카리나는 십대 때부터 가출을 반복하며 불행한 사춘기 시절을 보냈지만 이런 불운한 상황 속에서도 안나 카리나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열일곱 살 때 혼자서 프랑스 파리로 갑니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얼굴은 곧 프랑스 유명 인사들의 러브콜로 이어지면서 그녀는 피에르 가르뎅, 코코 샤넬의 모델로 활동합니다. 당시 그녀의 본명은 카렌 블라르케 바예르 Hanne Karen Blarke Bayer였지만, 코코 샤넬은 그녀를 프랑스식으로 우화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이름인 ‘안나 카리나’라는 예명을 지어줍니다.
그녀의 모델 활동을 지켜봤던 장 뤽 고다르는 그녀에게 <작은 병정(1960)>이란 영화의 여주인공 역할을 부탁하는데요, 그녀는 그의 대답에 응하고 촬영을 맞췄지만 아쉽게도 알제리 사태를 다뤘다는 이유로 검열에 걸려 개봉이 연기되고 맙니다. 하지만 두 번째 작품인 <여자는 여자다(1961)>에서 그녀만의 독특하고 귀여운 프렌치 억양과 다양한 표정 연기로 프랑스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곧 영국까지 퍼지게 되는데요, 패션모델답게 길쭉한 외모와 커다란 눈망울에 어울리는 메이크업, 그리고 프렌치 스타일의 패션은 곧 모즈들의 마음을 사로잡게 됩니다.
안나 카리나는 프랑스 누벨바그 영화 운동을 대표하는 얼굴이었고, 파리의 거리를 수놓은 찬란하고 매력적인 누벨바그의 오드리 햅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를 흠모하던 영국 소녀들은 그녀가 영화 속에 입고 나왔던 패션 스타일로 런던을 거리를 가득 채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