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을 대표하는 펑크록 밴드‘섹스 피스톨즈 Sex Pistols’에 ‘시드 비셔스 Sid Vicious’가 있다면, 한국엔 페이션츠 PATiENTS와 신해남과 환자들 HEYNAM SiN X PATiENTS의 ‘조수민’이 있다.
그는 시드 비셔스와 같은 포지션인 베이시스트지만 그가 들려주는 음악은 확연히 다르다.
2005년 한국의 펑크 서브컬처 부흥기 때 탄생한 [페이션츠]와 2016년에 결성된 [신해남과 환자]들로 쉼 없이 무대 위를 달리는 조수민.
지금까지 자신만의 펑크 에디튜드로 한길만을 고수하며 철학이 담긴 음악과 개성 있는 펑크 패션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그만의 펑크 에디튜드에 대해 들어보자.
인터뷰 : 조수민 @suminjo777
사진 : 류해원 @ryuhaewon
Q.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펑크록 밴드 페이션츠(PATiENTS), 신해남과 환자들(HEYNAM SiN X PATiENTS)의 보컬이자 베이시스트인 조수민입니다. 인디레이블 스틸페이스 레코드(STEEL FACE RECORDS), 클럽 스틸페이스(CLUB STEEL FACE)의 오너입니다. 노래를 만들고 공연하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밴드를 결성하게 되었고, 레이블을 설립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클럽을 오픈하게 되었습니다.
Q. 펑크 음악을 언제부터 좋아하셨나요? 처음 듣게 된 때는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A. 10대 시절, 삶과 죽음에 대해 고찰하고 있었는데 고뇌 끝에 ‘어차피 죽는 거 살아 있는 동안은 재미있게 살자’라는 답에 도달하였습니다. 당시 이것이 정답으로 느껴졌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시기에 듣게 된 음악 중에 펑크록이 가장 맞닿아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살자. 정해주는 대로 사는 것은 의미가 없어. 지루한 것은 싫어.’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즐거움을 추구하면서도 해탈과 초월, 자조를 동반한 그 느낌이 좋았습니다. 당시 가요는 가사가 무엇이든 간에 ‘아등바등 구차하게 살아가자 또는 대충 살자, 인생 괴롭다’ 이런 식으로 들렸습니다. 따분한 가요보단 펑크록이 더 재미있었습니다. 해탈한 동시에 무엇보다 치열한, 그 모순적인 아름다움이 발하는 빛을 보았고 그렇게 거기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시기상으로는 97년~98년으로 미성년자였으나, 당시에는 미성년자가 공연을 보던지, 음주를 하던지 해도 누가 말리거나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덕분에 즐겁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Q. 펑크 음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펑크 음악에 담긴 에너지와 태도를 특히나 좋아합니다. 저는 펑크록의 근원을 ‘하고 싶은 것을 한다’로 받아들였습니다. 덧붙이자면 방해되는 것은 무시하거나 극복하고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한다. 삶을 통해 이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펑크 음악이 가진 태도와 매력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질리면 그만하는 것이 맞습니다만 질리지를 않네요. 앞으로도 이렇게 살다 가고자 합니다. 패션에서도 마찬가지로 ‘입고 싶은 것을 입는다. 패션을 통해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한다.’ 이것이 펑크 패션의 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에디튜드에 있어서 음악과 패션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Q. 자신이 생각하는 펑크록은 무엇인가요?
A. 펑크록에 얽매이지 않고, 펑크록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채로,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우리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여전히 펑크록을 좋아하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펑크입니다.
한때는 10대 정신이라고도 생각해보았는데, 10대 중에도 꼰대, 병신은 많으니 꼭 그것은 아닌 것 같네요. 그저 두리뭉실하게 ‘멋진 사람들의 멋진 삶의 방식이다’라고 우기고 싶습니다. 이것을 설명 안 해도 어렴풋이 혹은 그것을 느낄 수 있는 소수들의 배타적인 무드 혹은 바이브. 그런 것이 펑크가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만 밖에서 보면 아주 웃기는 소리이지요. 어쨌든 펑크에는 유머가 함께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페이션츠 PATiENTS의 앨범들]
Q. 좋아하는 펑크 밴드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A. 클래식으로는 섹스 피스톨즈 Sex Pistols, 라몬즈 Ramones, 토킹 헤즈 Talking Heads, 버즈콕스 Buzzcocks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활동하는 밴드로는 더 큐어 The Cure, 더 댐드 The Damned, 슬레이브스 Slaves, 킹 기저드 앤 더 리저드 위저드 King Gizzard & The Lizard Wizard 등 너무나도 많아요. 아, 그중에서도 페이션츠와 신해남과 환자들을 특히 좋아합니다.
과거의 수많은 밴드들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만, 지금의 밴드들은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조금 더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우선 창작자가 어느 시대의 음악에 머물러 있는지를 보여주는 밴드는 싫습니다. 뭔가 답습만 하다가 끝나는 밴드들에겐 의미가 있을 리 없지요. 위대한 펑크록 밴드들은 언제나 과거보다는 미래를 지향해왔습니다. 전 미래 지향적인 밴드들을 좋아합니다. 과거의 영웅들을 따라 하는 것이 전부인 밴드들이 제일 싫어요. 아무리 따라 한들 그들과 똑같아질 수가 없거든요. 당연한 것 아닌가요?
Q. 지금까지 활동했던 밴드에 대해서 소개해주세요
A. 2005년 페이션츠 PATiENTS를 결성하여 휴식 없이 활동해왔고, 2016년 신해남과 환자들HEYNAM SiN X PATiENTS의 첫 싱글을 발표하고 전력으로 활동 중입니다. 남들이 보기엔 여유 있고 느슨하게 활동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창작에 있어서 무디게 굴거나 게을리 한 적이 없습니다. 홍보와 대외 활동에는 비중을 두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그쪽으로는 헛발길질을 종종 한 것도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는 활동은 창작에 많이 치우쳐진 듯 하네요.
밴드의 소개를 하기 전 노래를 먼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표한 여러분이 찾아 듣기 쉬울 곡들을 몇 곡 추천해봅니다. 페이션츠의 “18세기”, 신해남과 환자들의 “야간비행”, “On My Way”와 2019년 1월 23일에 발표한 얼마 안 된 뜨끈한 싱글인 “UGLY MOTHERS CLUB”을 추천합니다.
[신해남과 환자들 HEYNAM SiN X PATiENTS의 앨범들]
Q. 한국의 펑크 서브컬처 역사가 궁금합니다.
A. 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클럽 ‘드럭 DRUG’의 경우 ‘크라잉넛’, ‘노브레인’, ‘위퍼’ 그리고 가끔 공연하던 ‘코코어’가 정말 멋졌고, 그 인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몇몇 밴드들이 주변에서 부유하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 시절 마음속에 불길이 붙은 10대 관객들이 후에 1.5세대 혹은 2세대로 불리는 펑크록 밴드들을 결성하게 됩니다. 90년대 중후반의 드럭 공연은 밴드를 결성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마음속에 어떤 뜨거운 것들을 간직한 채로 살아가게 만드는 힘을 주었습니다. 당시 제가 10대라서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과장하지 않더라도 돌이켜보면 한국 펑크의 불씨가 만들어졌던 시기라고 정확히 짚을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을 가까이서 겪었던 이들은 분명히 남들과 다른 자신의 삶을 담담히 이어가는 것을 봅니다.
2000년 초반~2010년대 초반 스컹크 레이블 Skunk Label의 경우 저는 한국 펑크의 1.5세대로 분리하고 누군가는 2세대로 분리하기도 합니다. 분리가 뭐가 중요하겠느냐마는 여기서는 조금 더 반항적인 밴드들, 대중과 분리되고 싶은 친구들의 비중이 늘어납니다. 그리고 사운드 혹은 패션이 본고장인 영국 펑크에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날이 선 밴드들과 그 무엇이 되었건 타협하지 않으려는 밴드들, 남들이야 뭐라 지껄이던 밴드를 통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친구들. 클럽 스컹크헬 Skunk Hell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스컹크 레이블 소속의 밴드들 – 럭스, 페이션츠, 카크래셔, 카우치, 스파이키 브랫츠, 숄티캣 등을 비롯하여 나열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은 수의 밴드들이 들끓는 에너지를 가지고 등장하였고 함께 씬을 형성하여 파괴적이고 키치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2011년에 페이션츠의 데뷔 싱글 [Hanging Revolution]을 발표하였는데, 초판 CD가 발매 공연 당일에 공연장에서 매진되었습니다.
그때는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지금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리고 우리만 그랬던 것이 아니라 다른 동료 밴드들의 앨범 발매 공연들 또한 계속해서 흥행이 이어졌습니다. 클럽 스컹크 헬을 중심으로 분명한 ‘씬’이 형성되어 에너지를 이루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즈음 또 다시 그 인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부유물들 또한 합류합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시기의 펑크 밴드들에 대한 대중들의 태도는 좋거나 혹은 싫거나 두 가지로 극단적으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의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당시의 에너지를 간직한 채로 후에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게 됩니다. 크고 작은 세계 무대에서, 해외 유수의 페스티벌에서, 다양한 장르의 지속적인 액션으로. 이전 시기에는 해내지 못했던 일이죠. 하지만 선대와의 발걸음이 이어져 있기 때문에 일어난 일들입니다.
한국 펑크 서브컬처 중 제가 가까이서 (눈앞에서 코앞에서, 그리고 부둥켜 엉겨서) 겪었던 일들을 조금만 꺼내어보았는데 이야기가 길어졌습니다. 여기에 포함되지 않은 이야기들은 계속해서 누군가 이어 가주길 바랍니다. 제 말에 무엇인가 화내고 부정하면서 말입니다.
지금은 펑크가 유행이 아니기 때문에 인기에 편승하고자 하는 부유물들은 없으나 이전 시기의 부유물들이 아직도 정제되지 않고 방치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맛없는 라면 같은 놈들.
Q. 현재 활동하는 페이션츠 PATiENTS, 신해남과 환자들 HEYNAM SiN X PATiENTS의 에디튜드 또는 음악적 지향성이 궁금합니다.
A. 색으로 표현하자면 지금 ‘페이션츠’는 노란색, ‘신해남과 환자들’은 보라색에 가까운, 보라색이 되고 싶은 핑크색. 핑크일 바에는 네온 핑크이고 싶습니다만 지금 발색하는 법을 잘 몰라서 좋아하는 색들을 뒤섞는 중입니다. 여하튼 최근 들어 ‘페이션츠’는 형광 초록, ‘신해남과 환자들’은 보라색을 추구합니다. 공통의 지향점은 계속해서 좋은 노래들을 만들고 멋진 라이브를 하는 것입니다.
Q. 영국에서 공연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영국의 어디에서 공연을 했었나요?
A. 2014년 리버풀 사운드 시티 Liverpool Sound City 2014 페스티발 참가를 시작으로 런던의 Dublin Castle, AAA, Astbury Castle, Windmill Brixton, Korean Cultural Centre UK, Rich Mix, Birds Nest, 맨체스터의 Night & Day Cafe, 체스터의 The Live Rooms, The Saddle, 브라이튼의 The Prince Albert, 리버풀의 Kazmier Gardens, Brooklyn Mixer 그리고 브리스톨, 사우스햄튼, 위처치, 워싱, 릴, Llandudno, Todmorden 등지에서 공연하였습니다. 때로는 리버풀의 범선 위에서(정말로 18세기 범선 위에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때로는 영국 사람들도 잘 가지 않는 위트처치의 멋진 곳인 Percy’s Bar에서 공연하였습니다.
Q. 영국과 한국의 공연장이나 공연 문화에 대한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A. 가장 큰 차이점은 특히나 페스티벌에서 크게 느꼈는데, 관객들의 입장에서 느낀 것이 한국에서는 라인업이 공개되면 ‘유명한 누군가의, 혹은 내가 좋아하는 누군가의 공연을 보러 간다’의 개념이 강하지만, 영국에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밴드를 만나러 간다’의 개념이 강했습니다. 4-5년간 영국과 유럽의 여러 페스티벌 공연하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들 중 그 점이 가장 신선하고 즐거웠습니다. 그것은 투어를 하는 입장에서 즐겁게 공연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됐었습니다. 그리고 공연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이 커서 좋았습니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를 확실하게 표현해주는 관객들, 그래서 공연이 좋았을 때의 쾌감이 더욱 컸습니다. 한국에서는 공연장에서 좋은 밴드와 나쁜 밴드에 대한 반응이 다소 비슷합니다. 차이는 있지만 크지 않다고 해야 하나. 공연 후에 날이 선 호평과 비평들이 쏟아진다는 것은 아티스트에게 여러모로 좋은 자극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관객들 입장에서도요. 전 그런 문화가 정말 좋았습니다. 다른 차이점으로는 압도적인 공연장 수의 차이. 한국에서 가장 공연장이 많이 모여 있다는 서울의 홍대보다 영국의 외진 시골이 공연장이 더 많습니다. 그 점에 대해 많이 놀랐고, 공연할 곳이 정말 많아서 투어 할 때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Q. 영국의 펑크 서브컬처와 한국의 펑크 서브컬처의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영국의 ‘펑크 서브컬처’는 말 그대로 그들에게서 시작된 ‘펑크’의 클래식이 널리 알려져 존경받고 사랑받으며 굳건히 존재하고, 새로운 세대가 ‘서브컬처’가 추구하는 즐거움을 이해한 채로 지금 자신들의 시대와 상황에 따라 각자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봅니다. 한국에서의 ‘펑크 서브컬처’는 꽤나 대다수가 ‘영미권의 서브컬처 중에서 인기 있었던, 이미 메이저가 된 컬처’를 ‘서브컬처’라고 부르며 시대에 상관없이 답습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예를 들면 전 세대의 (자칭) 음악 애호가들만 해도 ‘너바나’와 ‘메탈리카’, 심지어는 ‘퀸’을 들으면서도 자신은 남과 다른 음악을 듣고 추구한다고 여겼던 점이죠. 그냥 세상에서 제일 인기 있는 음악과 밴드 중에 하나를 듣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구요. 2010년 이후에 생긴 공연장임에도 시작부터 비틀즈, 클래쉬 사진부터 벽에 걸어 놓고 시작하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서브컬처라고 칭하면서요. 끔찍하지요. 이것은 앞서 이야기한 바와 다르지 않습니다.
제 관점으로는 ‘서브컬처’는 당연하게도 유행에 상관없이 치열하게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 혹은 예술을 발현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소수 나마 한국에는 분명히 그런 멋진 ‘펑크 서브컬처’ 아티스트들이 존재합니다. 다만 이제는 ‘펑크’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지요. 왜냐하면 그 말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정말 재미없으니까. 엮이기 싫은 거죠. 멋진 펑크 공연을 보고 싶다면 ‘펑크’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가 낮고, 자신의 이름을 더욱 앞세우는 이들의 공연을 찾아보시기를 추천합니다. 펑크라는 멋진 장르의 이름 뒤에 숨은 사람들 말고요, 그 앞에서 자신의 길을 가는 밴드들. 그들이 한국의 ‘펑크 서브컬처’로 불리기를 바랍니다.



Q. 현재 한국 펑크 서브컬처는 어떤 것 같습니까?
A. 좋은 것들이 나쁜 것들에 섞여 가까이서 보이지 않는다면 아름다운 것들을 찾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개발 도중의 광산과도 같아요. 유치한 말로는 진짜와 가짜가 뒤섞여 있습니다. 구별하는 법은 쉬운데, ‘씬(SCENE)을 위하여’ 따위의 말을 하는 사람들이 보통 씬의 기생충인 경우가 많습니다.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멋진 사람들이 한국을 기반으로 세계를 무대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한국 펑크 서브컬처’로 불리길 바랍니다. 자신이 ‘한국 펑크 서브컬처’라고 억지로 주장하는 사람들 말고요.
Q. 스틸페이스 클럽을 운영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스틸페이스는 어떤 공간이자 어떤 클럽인가요?
A. 스틸페이스는 아름다운 보라색 클럽입니다. 차가운 색이기도 하고, 뜨거운 색을 동시에 발산하는 공간. 추억을 소중히 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공간이고자 합니다. 또한 분리와 공유가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길 바랍니다. 멋진 것을 동시에 모두가 알아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받아들이는 데 시차가 작용합니다. 멋진 순간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그것을 공유할 수 없는 사람들과 분리된 상태로 ‘이 순간 이 곳에’ 함께 하는 것. 50명 한정의 작은 장소에서 일어나는 순간들에는 입장객의 머릿수를 세는 기획자들은 닿을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운영하면서 자주 듣는 말은 “돈 벌 생각이 없구만”!!
영업 시간은 금요일, 토요일 저녁 8시~새벽2시. 공연을 하거나 공연이 없는 날에는 디제잉 혹은 뮤직 펍으로 운영됩니다. 최근에는 바이닐 디제잉 크루 “NIGHTWALK”가 합류하여 공연이 없는 토요일 중에 영롱한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운영진들이 모두 현역 뮤지션이자 애주가들이기 때문에 음향 장비의 관리와 아티스트 동선, 맥주와 음료의 청결도 관리를 우선시하는 편입니다.



Q. 앞으로 만들어 보고 싶은 음악 또는 이벤트가 있으신가요?
A. 첫 번째로 ‘츄파 카브라 CHUPA CABRA’ 내한공연, 2017년 페이션츠의 영국투어 중 체스터에서 본, 한 장의 앨범을 발표, 인스타그램 팔로워 500여명의 밴드. 이런 공연 이벤트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지만 만들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Damidge, Cry 내한공연. 투어 중에 만난 좋은 친구들을 선뜻 한국에서도 공연으로 만나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둘째로는 민원이 문제되지 않는 옥상 공연. 스틸페이스 루프탑에서 공연하거나 공연을 보면 기분이 진짜 좋은데 어렵네요. 공들여서 사운드 문제를 해결하고 나서도 인근 상권에서 경쟁업체라고 생각하여 민원을 넣고는 하는데, 옥상에 모여 있는 것은 불법이 아닙니다만 경찰이 오면 우선 파티 흐름이 끊겨서 짜증이 납니다. ‘나는 너네랑 경쟁할 생각이 없는데’ 말이죠. 그래서 2019년에는 전자 드럼을 활용한 볼륨 조절 등 기술적으로도 새롭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외부에서는 하늘로 보이게 착시 미러를 설치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자 하는 것은 한다!
Q. 죽기 전 보고 싶은 밴드의 라이브가 있다면 어떤 밴드입니까?
A. 최근에는 디오시즈 Thee Oh Sees, 더 큐어 The Cure, 더 댐드 The Damned, 틴에이지 팬클럽 Teenage Fanclub, 슬레이브스 Slaves, 더 크립스 The Cribs 등 앞선 네 팀은 봤는데 슬레이브스 Slaves는 꼭 또다시 보고 싶습니다. 더 크립스 또한 2015 리버풀 사운드시티 Liverpool Sound City 2015에서 함께 공연하면서 봤던 밴드입니다. 멤버들과 보면서 정말 신기했는데, 저렇게 음악도 좋고 앨범도 잘 녹음한 팀이 라이브를 저렇게 못한다?! 일부러 저러는 것인가?! 정말 신기해! 하면서 누군가와 새로운 친구들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Q. 음악은 점차 발전하고 있습니다. 미래의 펑크 음악은 어떨 것 같습니까?
A. 지금까지의 펑크 음악이 파충류 혹은 포유류처럼 보이고 만져지는, 골격과 외형을 갖춘 생명체의 형태였다면 이후 펑크는 변치 않는 아름다운 입자의 형태로 존재하여 여러 장르의 다양한 음악으로 재구성될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러하듯이.
Q. 펑크록을 좋아하지만 어쨌든 펑크 서브컬처인 만큼 패션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어떤 펑크 패션을 지향하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제 자신에 어울리는 펑크 패션을 지향하고자 합니다. 내가 가진 키, 피부색, 몸무게, 성격, 비율을 감안하여. 가장 좋아하는 것은 동네 어르신들이 걱정할 정도로 말라비틀어진 육신에 아무것이나 걸친 펑크 룩의 모습을 가장 좋아하는데요, 언젠가부터 몸집이 비대해지면서 그 느낌을 찾지 못해 우울하여 대안으로서 스케이트 보드 펑크 룩을 즐겨 입고는 합니다. 스케이트 룩은 관대하여 몸매에 무관하게 누구나 입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한 펑크록 패션은 그것이 마음이 되었든, 육신이 되었든 젊음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하고 날씬함과 패기가 함께하여야 멋집니다. 저 중에 하나라도 없다면 아름다움이 마이너스까지 감소합니다. 어서 다시 입고 싶습니다….. 자신의 밴드 티를 입고 스키니한 청바지에 스니커즈를 신은 모습의 펑크 록커는 시대를 초월하여 언제나 가장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Q. 브리티시 서브컬처에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우선 브리티시 서브컬처 멋지고 좋습니다. 헌데 국적을 전면에 내세운 서브컬처라… 그것을 즐기려면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궁극적으로는 아나키스트여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제 생각에 브리티시 서브컬처가 멋진 이유는 아나키를 제창한 펑크록 밴드가 바로 영국에서 나타났고 흥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우리나라만세!’라고 외치는 펑크 밴드를 만든다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수많은 미국의 펑크 밴드들이 미국 좃까!를 외치고 영국 밴드들이 영국 좃까!를 외쳐서 우리가 국적을 떠나 그들에게 열광할 수 있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일본의 경우 ‘우리나라만세!’하는 펑크가 많은데 그 점이 조금 재미없지는 않나요? 역사 속에서 진정한 애국자는 언제나 반란군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펑크 음악을 즐기고자 하는 분들께. 펑크 음악은 요런 거고 요런 거다~ 요즘은 정리가 다 되어 있는데, 그걸 따라가면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짓거리를 하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펑크 음악이라면 그 어떤 정리에도 반발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시끄러운데 이상하게 듣기 좋거나 정이 가는 밴드들의 라이브를 즐기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이 최고입니다.
당신이 멋진 펑크 록커를 꿈꾼다면 흉내 내고 싶어도 흉내 낼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Lust for Life를 부르는 이기 팝처럼, Kiss me deadly를 부르던 78년의 빌리 아이돌처럼, 팩토리 레코즈를 꾸렸던 토니 윌슨처럼, 멤버도 아니면서 밴드 이름을 자기가 지은 말콤 맥라렌처럼. 아니면 다 필요 없고 그저 당신 그대로.
“남의 흉내나 내고 있는 사람들이 펑크라는 것은 당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