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규모의 힙합 매거진 중 하나인 XXL은 매년 그 해의 신인을 선정합니다. 2018년의 신인도 어김없이 뽑았는데요, 그중에는 영국 래퍼가 한 명 있습니다. 유일한 여성 래퍼이기도 하죠. 바로 스테플런 던(Stefflon Don)입니다. 스테플런 던은 XXL의 신인으로 꼽히기 전에도 애플 뮤직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추천하는 신인이었습니다. 그라임 씬에서는 당연한 수준이었습니다. 그라임 씬에서 그간 보기 힘들었던 강한 비주얼은 물론, 영국과 자메이카를 기반으로 하는 랩이면서도 상대적으로 미국의 음악, 미국의 억양과 비교했을 때 이질감이 들지 않죠.
스테플런 던, 이름의 유래는 생각보다 심플합니다. 본인의 본명인 스테파니와 런던을 합친 후, 거기에서 최고를 의미하는 ‘Don’을 따로 떼어낸 것이죠. 그도 처음에는 런던 언더그라운드에 온전히 뛰어들었습니다. 그라임 씬에서 현재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브라 카다브라(Abra Cadabra)를 비롯해 이제는 중견 급에 해당하는 긱스(Giggs), 그라임 스타 스켑타(Skepta)까지 굵직한 사람들과 콜라보를 선보였습니다. 모보 어워즈(MOBO Awards)에서도 상을 받았고, 얼마 전에는 브릿 어워즈가 선정하는 크리틱스 초이스 세션에 선정되기도 했죠. 동시에 프렌치 몬타나(French Montana), 퓨처(Future)를 비롯해 미국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는 래퍼들과 콜라보를 하고 있습니다. 영국 래퍼로서 미국을 점령하는 것, 어쩌면 2000년대 초, 중반 디지 라스칼(Dizzee Rascal)보다 스테플런 던은 더 큰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미국에서 워낙 많은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동안 니키 미나즈(Nicki Minaj)가 장기 집권하고 있던 미국 최고의 여성 래퍼 자리를 최근에는 카디 비(Cardi B)가 차지하는 듯하지만, 스테플런 던은 그 자리를 위협할 정도라고 하네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요? 최근 미국은 물론 전세계 음악 시장은 긴 시간 힙합, 알앤비 음악이 대세였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세가 생겼죠. 바로 레게통, 댄스홀 음악입니다. 두 장르는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른데요, 두 장르가 팝 음악에서도 성공하는 문법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에드 시런의 “Shape of You”부터 션 멘데스의 “Treat You Better”까지 댄스홀을 차용한 곡이, “Despacito” 이후 제이 발빈(J. Balvin) 등의 남미 음악가들이 세계 음악 시장에서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메이카 음악을 기반으로 하며 영국 그라임을 정체성 중 일부로 삼고 있는 스테플런 던에게는 더없이 좋은 환경이죠. 여기에 스테플런 던은 보컬까지 가능합니다. 재주도 많고 음악도 잘하는, 매력 있는 엔터테이너죠.
스테플런 던이 디지 라스칼 이상으로 미국 음악 시장에서 그라임을 알릴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디지 라스칼보다 스테플런 던에게 음악 시장의 흐름이 좀 더 따라준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스테플런 던의 영역 확장,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