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달스톤, 찰리 콜린스는 한 클럽을 열게 됩니다. 클럽은 이주민들이 많이 모이게 되어, 아프리칸과 캐러비안 음악과 관객이 주가 되는 클럽이 되었습니다. 그중 레게 이벤트와 문화가 가장 주가 됐었는데요, 데스몬드 데커 Desmond Dekker나 지미 클리프 Jimmy Cliff그리고 밥 말리 Bob Marley도 그의 기획으로 그곳에서 공연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레게 뿐만이 아니어서 미국 모타운Motown의 한 시절을 담당 했던 스티비 원더 Stevie Wonder도 그의 클럽을 거쳐간 인물 중 한명이었죠. 같은 해, 전설의 클럽 포 에이시즈 Four Aces를 오픈했구요, 사업이 괜찮게 진행이 되자 그는 고향 자메이카로 넘어가서 음반 프로듀싱도 시작을 합니다. 그리고 동업을 했던 프로듀서는 바로 버니 ‘스트라이커’ 리 Bunny ‘Striker’ Lee (통칭 이번희 선생, 농입니다)였습니다.


음반을 만들고 프로모션을 하는데엔 최적임자였습니다. 런던에 거주를 하며, 이주민 커뮤니티의 중심에 서있었으며, 그 커뮤니티가 모일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버니 리와의 협업으로 꾸준히 그의 레이블을 통하여 음반을 발매 했기 때문에, 음악적인 철학이 뮤지션들의 마음에도 닿아, 금전과 좋은 명성을 모두 얻었죠.
클럽을 운영하는 것이 원래의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영국으로 이주를 하자마자 사운드 시스템을 만들었고, 미국의 리듬앤블루스부터 칼립소까지, 자신이 거주하던 집에서 홈파티를 열어 주변 이주민들을 모아 커뮤니티를 형성을 하였고, 모이는 사람이 늘어나다 보니 1960년대 초반 Sir Collins Club을 만들게 된 것이죠.
그러나 누구에게나 우여곡절은 있습니다. 1980년대에 브릭스턴 시위가 발발하면서, 그의 사업 뿐만이 아닌 타지에서 굳건히 살고 있던 이주민들의 커뮤니티도 터전도 모두 무너져버렸는데요. 의지를 굳히지 않고 터전을 잃은 이주민들을 돕기 시작한 것이 그의 주된 삶의 방식이 되어, 불과 10년 전까지 이주민들의 터전을 다시 위협하는 달스톤 재개발 반대 운동 등을 주도하는 등, 다양한 수식어를 지닌 Sir Collins로 삶을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