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지도 못하면서
산울림, 신중현과 엽전들, 장기하와 얼굴들, 평양냉면, 그리고 소녀시대 써니까지. 대중들에게 각인된 하세가와 요헤이 aka 양평이형의 키워드들이다. 우리는 하세가와 요헤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브라운관 속 그리고 무대 위에서의 모습만이 과연 그의 전부라 할 수 있을까.
개인적인 경험 하나. 평소 동교동 김밥레코즈에서 자주 바이닐 쇼핑을 하는 편이다. 그러던 몇 년 전 어느날 우연히 하세가와 요헤이의 위탁 판매 박스를 목격하게 되었다. 흘러간 가요 혹은 시티팝 앨범이 들어있겠거니 생각하고 들여다본 상자 속에는 오아시스, 블러, 라이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프란츠 퍼디난드와 같은 앨범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그에게 영국 음악과 바이닐에 관해서 실컷 떠들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아래는 그날 밤을 담은 극히 일부다.
인터뷰 / KIXXIKIM
포토 / poohdo
스타일리스트 / 손야비
장소 / Fred Perry Seoul
Special thanks to 두루두루amc, Fred Perry Korea
비틀즈(The Beatles)와 함께 유년기를 보냈다고 들었어요. 그 계기와 기억에 남는 순간에 대해 얘기해주세요.
일본에 ‘뽀뽀뽀’같은 어린이 방송이 있었어요. 거기서 비틀즈 음악을 많이 사용했어요. 아직도 기억 나는게, ‘Please Please Me’나 ‘Baby It’s You’같은 노래가 방송에서 나왔어요. 이건 도대체 뭔가 싶어서, 당시 초등학교 동창의 친형에게 물어보더니 이건 ‘비틀즈’라는 영국 밴드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삼촌에게 생일 선물로 ‘Please Please Me’ 레코드를 받았어요.
가족들에게 비틀즈 얘기를 평소에 많이 하셨나봐요.
한번은 삼촌이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봤을 때, 비틀즈의 레코드가 갖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그래서 생일 선물로 받았던 것 같아요. 아마 1980년에서 81년, 그쯤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 어린이 방송이 유년기 시절 브리티시 음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 준 셈이네요.
그렇죠. 바이닐을 모으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어요. 당시에는 아무리 용돈을 모아도 레코드를 살 수 없었어요. 그러니 생일같은 이벤트가 있을 때 선물로 바이닐을 받았죠. 처음엔 비틀즈 판을 모았어요.
바이닐을 초등학교 때부터 모으기 시작하셨군요. (웃음)
직접 바이닐을 구입하기 시작한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중학교 1학년 즈음이에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용돈을 받기 시작했으니까요. 용돈 모아서 7인치 사고 그랬죠. 그 당시 일본에는 라이센스반보다 수입반이 저렴했어요. 여긴(한국) 거꾸로죠?
네. 아무래도 수입반보다 라이센스 앨범이 5000원에서 크게는 10000원 정도 저렴한 편이에요.
일본에는 해설지라던가 보너스 트랙 추가 때문에 값이 더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가사 해석도 내지로 들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작업 때문에 값이 더 나가는 것일 수도 있고요. 솔직히 말해서 네이티브가 아닌 이상 영어 가사를 100% 이해할 수 없잖아요? 직역으로 감상하다 보면 슬랭 같은 것들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엔 유투브같은 플랫폼을 통해 언제든지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또 음악 추천까지 쉽게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당시에는 무조건 앨범을 구입해야만 했죠.
동네 레코드샵에 가면 가게 주인이 추천글을 앨범마다 써놔요. 예를 들어 ‘킹크스(The Kinks)를 좋아하는 사람이 들으면 마음에 드실 겁니다.’ 같은 식이죠. 그리고 일단 저는 그 당시 앨범을 살 때 커버를 많이 봤어요. 당시 영국 밴드들은 다 수트를 입고 연주했잖아요? ‘비틀즈가 수트를 입었으니까, 그러면 비틀즈와 비슷한 사운드일 수 있겠다’ 하는 식이죠. 그렇게 킹크스를 알게 됐어요.
디깅을 앨범 커버로 하셨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정확히 67년부터 69년까지 나왔던 앨범들은 락 역사상 가장 ‘꽝’이 없는 시기에 해당해요. 그러니 커버만 보고 앨범을 사와서 판을 들어도 “하.. 왜 샀지” 하는 순간이 없었어요. (웃음) 그러다가 모습은 비틀즈와 비슷한데 왜 이렇게 폭력적이지 하고 충격을 받은 밴드가 더 후(The Who) 였어요. 사운드도 엄청 크고 나중에 찾아보니 기타를 파괴하기도 하더라고요. 강한 인상을 받았던 기억이 나요.
공연 얘기로 넘어가볼게요. 한국과 일본의 공연 시장 인프라 차이를 한 줄로 설명하면, 일본은 비틀즈가 다녀간 나라에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좋아하셨으니, 자연스레 공연도 많이 관람했을 것 같아요. 그 당시 공연을 본 브리티시 락 그룹이 있는지 궁금해요.
(한참 고민하더니) 진짜 많이 봤는데 지금 기억이 하나도 안나요. 아, 라이드(Ride)를 봤던 기억이 있어요. [Nowhere] 앨범이 나왔을 때니까 91년도 정돈 것 같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당시에 공연 본 밴드는 영국 밴드보다 미국 밴드가 훨씬 많았어요. (웃음) 소닉 유스(Sonic Youth),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다이노서 주니어(Dinosaur Jr.), 머드허니(Mudhoney)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아, 홀(Hole)도 봤어요! 그러고보니 미국 밴드를 정말 많이 봤었네요.
90년대 영국에서 브릿팝이 세를 키웠다면, 미국은 얼터너티브 락이 차트를 장악했어요. 그래서 브릿팝 외에 얼터너티브와 같은 미국 락 음악도 좋아하셨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어요.
저는 원래 6-70년대 영국 음악을 좋아했어요. 그렇지만 90년대 당시 리얼 타임으로 듣는 음악이 미국 쪽으로 확 기울어버렸어요. 그래도 처음 스톤 로지스(The Stone Roses)를 들었을 땐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미니멀 하다가도, 스미스 같은 부분이 있기도 한데, 또 다르기도 했고 여러모로 굉장히 묘한 인상을 많이 받았어요. 해피 먼데이즈(Happy Mondays)가 처음 나왔을 때도 되게 놀랬고요.
90년대 음악 동향을 훑다 보니, 아무래도 미국 음악을 얘기 할 수밖에 없었네요. (웃음) 대망의 영국 여행은 94년 즈음에 다녀오신거죠?
당시 영국은 제게 굉장히 먼 나라였고, 마음 먹고 떠나지 않으면 언제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하던 밴드도 쉬고 2주 정도 다녀왔죠. 여행 기간 동안 참 많은 것들을 겪었어요.
조금 구체적으로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더 후를 좋아했는데, 당시 1집은 일본에서도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앨범이었어요. 당시 권리 문제가 있어서 한동안 영국에서도 재발매 앨범이 나오지 못했거든요. 그렇다면 오리지널 판을 사야 하는건데, 일본에서 아무리 찾아도 그 앨범을 구할 수가 없는 거죠. 영국에 가기로 마음 먹은 계기 중 하나가 바로 더 후 1집을 사는 거였어요.
와, 그런데 런던 중심가 엘피 샵에도 물건이 없어요. 물어 물어서 히드로 공항 근처의 작은 바이닐 샵을 가게 됐어요. 누군가가 거긴 있을 수도 있다고 일러줬거든요. 들어가자마자 바닥에 있는 박스를 뒤적거렸는데 롤링스톤즈 오리지널 판이 계속 나오는거에요. 한 3파운드에서 5파운드 정도 됐을 거에요. 그래서 이 가게엔 더 후 1집이 있을 수 있겠다 싶어 물어봤어요.
그러더니 가게 주인이 “너 후 좋아해?” 라며 묻더니 잠깐 기다리라는거에요. 그러면서 가게 뒷편에서 후 1집을 가져왔어요. 이건 다른 판보다 좀 비싸다면서 제시한 금액이 20파운드. 지금 살려면 거의 50만원에서 60만원 정도에 육박하죠. 그 가게에서 좀비스 앨범도 10파운드 정도에 샀는데, 그 앨범들도 지금 사려면 거의 50만원 정도 해요. 그렇게 여행 기간 동안 판도 사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그랬죠. 아참, ‘플라밍고스(Flamingoes)’라는 밴드 혹시 아세요?
글쎄요, 어렴풋이 이름 정도는 들어본 것 같아요.
그다지 유명한 그룹은 아니에요. 그런데 레코드샵에 가면 매장에서 푸쉬하는 앨범들이 보통 CD 재생기 안에 있잖아요? 영국에 가기 전 일본 레코드샵에서 플라밍고스 음악을 그렇게 들었거든요. 당시 괜찮다 생각했었는데, 런던에 도착해서 타임아웃 매거진을 보니까 오늘 공연한다고 잡지에 써있는거에요. 와하하. 이건 보러 가야되겠다 싶어서 바로 밖으로 나갔어요.
그런 우연이 다 있네요. 라이브 클럽으로 곧장 가신 건가요?
네. 그런데 진짜 작은 곳이었어요. (잠깐 고민하더니) 공연장이 여기 매장 반 정도 되는 크기였어요. 조금 당황했죠. 유명한 밴든줄 알았거든요. 시디도 라이센스로 들어와있고 일본 레코드샵마다 푸쉬를 했었으니까요. 게다가 아무리 기다려도 관객이 안 와요. 그렇게 기다리던 중 이상하게도, 일본인 두 명이 공연장 지하로 내려왔어요. 저보고 일본에서 왔냐고 물어보면서 대뜸 하는 말이, 오늘 공연이 취소됐다는거에요. (전원 웃음)
알고 보니 멤버 한 명이 감기에 걸려서 공연을 못하겠다고 해서 결국 공연이 취소된 케이스였어요. 그 외에도 블루 에어로플레인스(The Blue Aeroplanes) 같은 밴드도 보긴 했지만 공연보다는 대부분 쇼핑이나 동네를 돌아다니는데 시간을 보냈어요.
그 당시 영국에서는 브릿팝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오아시스(Oasis) [Definitely Maybe]도, 블러(Blur) [Parklife]도 모두 94년에 발매됐고요.
솔직히 제가 영국에 가기 전만 해도 블러를 별로 안 좋아했었어요. 근데, 영국에서 택시를 타고 하이드 파크를 지나가는데 택시 라디오에서 ‘Parklife’가 나오는거에요. 그때 “아, 이거구나!” 싶었어요. (전원 웃음) 앨범이 발매된 나라에서 음악을 듣게 되니 일본에서 느끼지 못했던 의미같은 것들을 알게 됐어요.
90년대 일본 음악 시장도 굉장히 거대했잖아요. 그래도 영국은 영국이던가요?
그렇죠. 왜냐면 지금만큼 모든 앨범이 수입되는게 아니였어요. 책에서만 본 앨범들을 실물로 많이 접할 수 있었어요. 신품, 중고 할 것 없이요.
그렇다면, 영국에 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무래도 레코드가 맞을까요?
레코드라기보단 ‘음악’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 당시 일본에서도 밴드를 했었잖아요. 영국에서 좋은 기운을 얻고 돌아와 좀 더 제대로 해보겠다는 마음이 들었을까요.
당시에는 오히려 일본을 포기하고 영국에서 음악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영국에서 어떤 음반 샵에 가서 앨범을 물어보면, 샵 주인이 “얘네 어제 여기 왔었어.” 이런 얘기를 빈번하게 들었어요. 일본에 계속 있게 되면 ‘미국에서 온 밴드’, ‘영국에서 온 밴드’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멈추게 되잖아요? 즉각적인 움직임이 있는 곳 옆에서 음악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 싶었죠.
오늘 촬영을 도와준 포토그래퍼도 영국에서 비슷한 경험을 겪었어요. 브리스톨 레코드샵을 다니면서 트립합 판을 막 찾는데, 주인에게서 “매시브 어택 멤버가 근처 산다”, “걔네가 우리 가게 단골이다” 같은 얘길 들었다 해요. (웃음)
그러니까요. 제가 뉴욕에 가서 어느 카페를 갔는데, 일행이 어느 자리를 가리키더니 데이빗 보위랑 앤디 워홀이 자주 앉았던 자리라는 거에요. (전원 웃음) 일본에서 아무리 잘 해봤자 음악이 태어난 나라에 있는 이들을 이길 수가 없는 거에요.
그렇게 영국에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갖고 잠깐 일본으로 돌아왔는데, 그 때 운명처럼 동료 사토 유키에씨에게 한국 음악이 담긴 테이프를 선물받아요.
신중현과 엽전들이랑 산울림 때문에 제 인생도 달라졌죠. (웃음)
재밌는 가정 한 번 해볼게요. 만약 그 때 테이프를 선물받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180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을까요?
그렇죠. 어쩌면 영국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어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웃음) 그렇지만,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과연 내가 한국에 오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하는 것들이요. 장기하와 얼굴들 덕분에 영국도 가고 미국도 갔어요. 먼 길을 돌아 왔지만, 결국엔 한국과 맺은 인연 덕분에 영국에 더욱 가까워졌다랄까요? 그리고 만약 20대에 영국에 정착했더라면 다시 일본에 돌아왔을 지도 몰라요. 쉽게 말해 좌절감을 갖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는 거죠. 한국에서의 활동 덕분에 제가 좋아하는 영국 그룹과 친분을 쌓았어요. 라이드와 노엘 갤러거 사이에 공연도 했었고요.
아마 2015년 밸리락이죠?
네, 저로서는 완전 영광이었죠. 백스테이지에서 앤디 벨과 인사도 하고 몇 번 지나치기도 했는데 따로 레코드에 사인을 받거나 하진 않았어요. 일단 사인을 부탁하는게 같이 공연하는 입장에서 좀 그렇더라고요. 약간 창피하기도 했고요. 사실 저는 사인보다 대화를 더 하고 싶었어요. 결국 대화도 나누지 못했지만요. 그런데 제가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어요. 화장실 문을 열었는데, 거기 노엘 갤러거가 있는 거에요. (전원 웃음) 와, 완전 깜짝 놀랐어요. 아무도 없는 줄 알았거든요. 노엘이 ‘미안, 미안’ 이러는데. 하하.
한국에서의 활동 덕분에 어릴 적 즐겨 듣던 밴드와도 만나게 된 셈이네요.
그렇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오늘도 판을 가져왔지만 온리 원즈(The Only Ones) 라는 펑크 밴드 멤버 집에 초대받았던 일이에요. 제가 온리 원즈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들이 일본에 왔었던 적이 있어요. 당시 프로모터가 제 지인이라 운 좋게 자리를 같이할 수 있었는데 그때 보컬 피터 페렛(Peter Perrett)이 영국에 놀러 올 거면 연락하라는 얘길 해줬어요.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국에 연락했더니 “우리 집에 와!”라고 하시더라고요.
온리 원즈의 대표곡이 ‘Another Girl, Another Planet’이에요. 그런데 그 노래가 영국 통신 회사 보다폰(Vodafone) 광고 음악에 쓰여서 번 돈으로 스튜디오를 장만하셨대요. 런던 이즐링턴 (Islington)에 있던 그 스튜디오에 놀러 갔는데, 알고 보니 거기가 폴리스(The Police), 다이어 스트레이츠([Dire Straits), 댐드(The Damned) 같은 그룹들이 녹음했던 스튜디오라고 하시더라고요.
또 그분 아들 역시 뮤지션이에요. 베이비솀블즈(Babyshambles) 멤버로 피트 도허티(Pete Doherty)랑 같이 활동했던 경력이 있어요. 저, 피터 페렛, 그리고 아드님 그렇게 셋이 태국 카레 식당에 가서 식사도 하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그분 집에서 하루 정도 시간을 보냈는데 제가 하는 밴드가 궁금하다고 해서 같이 유튜브에서 장기하와 얼굴들 영상도 보여드리고 서로 쓰는 악기 정보도 공유하고 그랬죠. (웃음)
일본에서는 롤링 스톤즈가 범국민적 인기를 갖고 있잖아요? 더 후도 그렇고요. 그런데 90년대 중반 한국에 처음 왔을 때 롤링 스톤즈 같은 브리티시 그룹이 생각보다 인기가 적어 의아하셨을 수도 있겠어요.
그랬죠. ‘롤링 스톤즈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팀인데 왜 다들 모르지?’ 같은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헤비 메탈은 얘기가 다르잖아요. (전원 웃음)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나 뉴 웨이브 오브 브리티시 헤비 메탈(NWOBHM) 같은 팀은 또 한국에서 인기가 많아 신기했어요.
혹시 그 이유에 대한 생각을 해보신 적 있으신가요? (웃음)
아무래도 사람들이 락보다는 팝을 선호하잖아요? 롤링 스톤즈의 음악은 아무래도 블루스 쪽에서 왔고, 비틀즈는 클래시컬해요. 그리고 비틀즈는 ‘Yesterday’나 ‘Let It Be’같은 발라드풍의 트랙들이 있잖아요. 롤링 스톤즈는 없죠. 아무리 그들이 발라드를 만들어도 블루스 냄새가 많이 나는 거죠. 뭘 해도 락큰롤이 되는 거에요. (웃음)
비틀즈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구 종말이 왔을 때 가져가고 싶은 레코드’로 비틀즈의 [Revolver]를 선정하셨어요. 아직도 유효한가요?
사실 사람 마음은 언제나 바뀌잖아요? (웃음) 하지만 [Revolver]가 저에겐 교과서이자 바이블 같은 앨범이에요. 바뀌지 않을 것 같아요.
인터뷰도 이제 막바지입니다. 다른 인터뷰에서 듣지 못했던 얘기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왜냐면 물어보질 않으니까요. (전원 웃음) 영국 음악에 대한 질문을 잘 안 하세요. 대부분은 산울림이나 신중현 선생님에 대한 질문들이죠. 하하
롤링 스톤즈는 락큰롤 스타지만, 그들의 혓바닥 로고는 서브컬처로 통용되고 있어요. 그리고 섹스 피스톨즈나 버즈콕스와 같은 음악이 유명할지라도, 그들의 애티튜드는 서브컬처라 할 수 있어요. 하세가와가 생각하는 서브컬처는 무엇인가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메인이 있기에 서브가 있고, 반대로 서브가 있기에 메인이 존재할 수 있어요. 서브컬처 때문에 메인스트림이 빛날 수 있고 반대로 메인스트림이 빛나는 이유가 궁금하면 서브컬처를 공부해야 하죠.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처는 상호 보완적이라고 생각해요. 빛과 그림자 같은 관계요. 물건은 반드시 그림자가 있고, 그림자는 빛에 따라 길어지기도 하고 짧아지기도 하잖아요? 메인이 되는 물건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만, 환경에 따라 그림자의 방향과 크기가 달라져요. 예술을 사랑한다면, 그림자의 움직임을 잘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BRITISH SUBCULTURE VINYL 7
하세가와 요헤이에게 브리티시 서브컬처를 대변하는 바이닐을 가져와 달라 부탁했다. 그는 주섬주섬 가방에서 몇 장의 판을 꺼냈다.
The Who – My Generation (1965)
이 앨범을 사기 위해 런던에 갔다고 해도 무방해요. 65년 오리지널 앨범이에요. 제 컬렉션 중에서 이 앨범보다 가격으로 따지면 더 귀한 앨범들이 있지만, 가치로 따지면 이 앨범이 가장 소중해요.
The Pretty Things – Get the Picture? (1965)
‘프리티 띵즈’라는 밴든데, 롤링 스톤즈 오리지널 멤버가 60년대 중반 결성한 밴드에요. 더 후와 함께 여러 역사를 쓰기도 했던 밴드입니다. 앨범을 들어보면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밴드가 누구를 직접 때리고 그런 게 아니라, 사운드적으로 폭력적인 펑크 사운드란거죠. (웃음)
Sex Pistols – Never Mind the Bollocks, Here’s the Sex Pistols (1977)
이건 뭐 말할 필요도 없는 앨범이에요. (전원 웃음) 제가 기타를 잡게 해 준 앨범이기도 해요. 학교 다닐 당시에, 일렉트릭 기타를 가지고 있는 애들이 없었어요. 그나마 몇 있는 친구들도 제게 밴드를 하자고 물어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당시 친구들은 건스 앤 로지스 같은 LA 메탈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어떤 친구가 갑자기 저한테 “펑크 밴드를 하지 않을래?”라고 물어봤어요. “펑크는 어떤 음악이냐”고 제가 반문하니, 그때 섹스 피스톨즈를 소개해줬어요. 밴드를 권유한 친구는 펑크는 어렵지 않다고 저를 설득했어요. 근데 막상 연주해보니까 정말 어려운 거 있죠. (웃음)
The Only Ones – The Only Ones (1978)
아까 말했던 온리 원즈 앨범이에요. 밴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Another Girl, Another Planet’도 이 앨범에 들어있죠.
Ride – Nowhere (1990)
라이드는 제가 예전에 좋아했던, 그리고 지금도 좋아하는 밴드에요. 그래서 한 번 가져와봤죠. 저는 기타리스트가 연주하는 베이스에 관심이 많아요. 앤디 벨의 연주를 좋아하죠.
The Verve – Urban Hymns (1997)
이 앨범을 브릿’팝’ 앨범이라고 말하긴 조금 어렵지 않을까요? 뭐랄까, 연주도 조금 루즈하고 노래도 길고요. 쉽게 말해서 3분만에 끝나는 음악이 아니잖아요. 버브를 처음 들었을 때 ‘싸이키델릭한 친구들이 또 나왔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 앨범도 그래요. 팝적인 성격을 지닌 ‘Sonnet’이라는 트랙을 가장 사랑합니다.
Bernard Butler – People Move On (1998)
버나드 버틀러는 원래 스웨이드 기타리스트였어요. 그때도 좋아했지만, 저는 이후 버나드가 낸 솔로 앨범을 훨씬 좋아해요. 앨범에서는 ‘Not Alone’을 제일 좋아했어요. 버나드 버틀러는 영국인이지만, 이 노래에서는 아메리칸 락 적인 부분이 존재했어요. 글램 락처럼 들리기도 하고요.
TOO FUZZY, HASEGAWA!
익히 알려진 대로 하세가와 요헤이는 퍼즈 페달을 수집하는 매니아다. 그가 직접 말하는, 영국 냄새를 지닌 퍼즈 셋.
Sola Sound Tone Bender Mk III
70년대 초반에 제작된 대표적인 퍼즈에요. 티 렉스(T. Rex)의 마크 볼란 (Marc Bolan)과 같은 사람들이 사용했던 이펙터죠.
VOX Tone Bender Mk III
사실 앞서 설명한 제품과 비슷한 계열의 페달이에요. 이 제품은 복스에서 나온 것이고요. 페달에 적힌 타이포가 예뻐서 소장하고 있어요.
Shaftesbury Duo Fuzz
사실 이건 일제 페달이에요. 런던에 가면 악기상 거리인 덴마크 스트리트(Denmark Street)가 있어요. 그 동네에 ‘로즈 모리스(Rose Morris)’라는 가게가 있는데, 그 곳에 수출하던 일본제 퍼즈에요. 그래서 한 번 가져와봤죠. 아무래도 영국인들이 많이 사용했을 테니까요.